시사

정조와 비운(悲運)의 사도세자

설악산곰 2024. 9. 12. 02:19

우리 역사에는 무수한 왕들이 있었다. 어떤 임금은 한 몸을 바쳐, 백성과 나라를 위해 봉사했고, 어떤 임금은 전제권력을 마음대로 휘둘렀다.조선 왕조에 들어와 혼신의 힘을 기울여 위대한 업적을 많이 남긴 임금으로는, 세종과 정조를 꼽을 수 있다. 특히 정조(正祖,1752~1800, 재위1777~1800)18세기라는 어려운 시대상황에서, 마흔아홉, 길지 않은 생을 살면서 많은 업적을 남겼고, 왕도정치를 구현하기 위해 온 힘을 기울였다.

그러나 그 뜻을 완전히 펼치지 못하고 장년의 나이에 세상을 떠나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다. 정조가 태어날 무렵에는 영조의 오랜 통치로 나라가 어느정도 안정되어 있었다. 정조는 한창 가을 기운이 돌 무렵, 창경궁의 경춘전에서 사도세자를 아버지로, 혜경궁 홍씨를 어머니로 하여 태어났다. 왕손이 태어나자 누구보다 기뻐한 것은 할아버지 영조였다.

아들 사도세자의 행동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영조는 남달리 손자를 사랑했다. 더욱이 어린 손자가, 학문에 열중하고 효성이 지극하자, 더 말할 수 없을 정도의 총애를 쏟아부었다. 그러나 어린 왕손에게는 너무나 많은 시련이 닥쳐 오고 있었다. 세자 신분으로 정사를 맡고 있던 사도세자는 궁중에서 사사건건 마찰을 빚고 있었다. 사도세자는 자유분방한 성격으로, 몰래 궁중을 빠져나가 평양에 가서 기생을 끼고 놀기도 하고 비구니와 어울리기도 했다.

또 경종(사도세자의 큰아버지)이 노론에게 몰려 죽은 일을 두고, 큰아버지의 원수를 갚겠다고 큰 소리로 떠들기도 하고 원로대신들을 함부로 대하면서 억누르기도 했다. 자연히 사도세자의 반대파가 형성되었다. 특히 노론에서는 이런 세자가 왕이 되면 자신들의 신변이 위협을 받거나 정치적 지위마저 흔들릴 것으로 예상했다. 그리하여 세자에 대한 모략이 끊일 날이 없었다. 부왕인 영조도 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더구나 세자의 처가인 홍씨 세력도 노론 편에 서거나 은근히 동조함으로써 세자를 견제했다. (출처, 조선왕조실록. 작성자 DJ Song) 그리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