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늙어도 마음은결코 늙지 않는다 1
새해가 되어 한 살을 더 먹게 되었다. 1958년생 개띠이니 지난해에 만 65세로 국가가 공인하는 노인이 되었다. 노인은 물론 ‘어르신’이 되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건만, 보건소에서 어르신께 독감 예방주사를 무료로 놓아주니 빨리 맞으시라는 문자가 날아왔다. 노인이 되었다는 것이 실감 나지 않지만 나이를 숨길 순 없다. 연말에 만난 친구에게서 내 모습을 봤다. 친구의 머리에 내린 백발과 눈가의 깊은 주름에서 노인의 모습을 봤다. 친구의 늙음이 안타깝고 가슴 아프다. 대중가요의 가사처럼, 벽시계는 가끔 고장이 나서 멈추기도 하건만 무정한 세월은 고장도 없다.
늙음은 소중하게 여기는 삶의 가치들과 이별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선, 육체적 노화가 진행되면서 젊은 육체와 이별하게 한다. 아름답고 싱싱했던 자신의 신체상(body image)과 이별해야 한다. 감각·운동 기능도 떨어져 물건을 잘 떨어뜨리며 넘어지고, 기억력이나 기민성과 같은 심리적 기능도 서서히 감퇴한다. 또, 자녀들이 성장하여 독립하면서 부모 역할과도 이별한다. 자녀를 보살피고 감독하던 매니저의 역할과 이별해야 한다. 특히, 은퇴라는 중요한 사건을 겪으면서 오랜 세월 일해온 직장과 이별해야 할 뿐 아니라 동료들과도 이별해야 한다. 그리고 부모의 죽음을 겪으면서 부모와도 가슴 아픈 이별을 해야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늙는 것을 두려워한다. 심리학에서는 늙음에 대한 두려움을 노화 불안(aging anxiety)이라고 한다. 사람마다 노화 불안을 경험하는 정도가 다르다. 연구에 따르면, 노화 불안이 심한 사람들은 노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강하고 자신의 외모가 늙어가는 것, 노년기에 불행해지는 것, 삶의 중요한 것들을 상실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크다고 한다. 이러한 노화 불안의 밑바닥에는 죽음에 대한 불안이 존재한다. 늙음이 두려운 것은, 몸과 마음이 시드는 것일 뿐 아니라 죽음이 가까이 다가옴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노화 불안에 대처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다. 건강과 장수를 위해 운동과 건강식품에 집착하기도 하고 자녀와 심리적으로 유착하면서 자녀에게 의존하기도 한다. ‘피는 물보다 진하고, 돈은 피보다 진하다’는 말이 있듯이, 어떤 사람은 자녀도 믿지 못해 돈에 더욱 집착하기도 한다. 때로는 정치적 이념이나 집단 활동에 과도하게 몰두하는 사람도 있다. 노화 불안을 완화하기 위해 어떤 대처 방법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노년기의 삶이 현저히 달라진다.
사람들은 늙어갈수록 불행할 것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하나의 문이 닫히면 새로운 문이 열리는 법이다. 싱싱하고 팔팔한 젊음의 문이 닫히면, 여유롭고 편안한 노년의 문이 열린다. 여러 나라의 조사 결과를 종합하면, 나이와 행복의 관계는 유(U)자 곡선이다. 치열한 직장생활과 자녀 교육에 매달리는 40∼50대 중년기에 행복도가 바닥을 찍고, 이후부터 노년기에는 행복도가 증가하는 패턴을 보인다. (출처, 문화일보. 글 권석만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