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법정 스님이 죽비로 내리쳤다 “마음 속에 갇히면 망하는 것”

설악산곰 2024. 3. 23. 03:28

법정 스님이 죽비로 내리쳤다 “마음 속에 갇히면 망하는 것”  법정(法頂·1932~2010) 스님이 돌아가신 지 벌써 14년이 됐다고 합니다. 돌이켜 보면 저는 기자 생활 중 단 한 번 그분을 만나뵌 적이 있었습니다. 2006년의 일이었습니다. 마침 주말에 감기몸살을 심하기 앓은데다 어쩌다 종교 담당도 아닌 저한테 떨어진 취재였기 때문에 당시엔 수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돌이켜보면 대단히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며칠 전 내린 눈이 채 다 녹지 않았지만, 서울 성북동 길상사 대웅전 앞마당은 수백 명의 신도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습니다. 일요일인 2월 12일 오전, 참선 수행인 동안거(冬安居)를 끝낸 법정 스님이 이곳에서 대중들에게 법문을 전하게 되는 자리였습니다. 산 속에서 쓴 ‘무소유’ ‘산방한담’ ‘텅 빈 충만’과 같은 산문집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종교의 벽을 뛰어넘어 수많은 독자들에게 사색과 수도를 통한 인생의 참뜻을 전해 온 바로 그 인물이었습니다.

“오셨어요.” 사람들이 뜰에 놓인 의자 위에 앉고, 스님은 대웅전 안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불교계에서 이렇게 많은 청중을 상대로 설법하는 스님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새해 복 받은 업으로 날마다 복된 말을 맞으십시오.” 스님이 말문을 열었습니다. 그의 음성은 편안하면서도 강렬했습니다.

“제가 겨울 동안 겪었던 일을 말씀드리지요. 이번 겨울에 강원도에는 좀처럼 눈다운 눈이 내리지 않았습니다. 기우제가 아니라 ‘기설제’까지 지낼 정도였지요. 눈이 오지 않으면 스키장 영업도 안 되고, 여기에 봄 가뭄까지 겹치면 농사까지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폭포가 얼었다고 합니다. 개울물이 바닥까지 꽁꽁 얼었다는 것입니다. 영하 20도까지 내려가는 강추위였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덮인 눈이 보호막 역할을 해 줘 개울 바닥에는 물이 흘렀겠지만, 이번엔 달랐습니다. 사람들이 메말라가고, 새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물이란 것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물 쓰듯 한다’는 말은 얼마나 무엄한 표현인가요?”

스님이 말을 이었습니다. “그렇게 보드랍고 맑고 투명한 물도 한 번 얼어붙으니 도끼로도 잘 안 깨질 지경이었습니다. 우리 마음도, 이렇게 한 번 얼어붙게 되면, 모진 마음을 먹게 되면, 바늘 하나 꽂을 틈도 없이 메마르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심여수(心如水), 마음이란 물과 같습니다. 물은 흘러야 하고, 흐르는 것이 물의 생태입니다. 흐름으로써 자연도 살고 만물도 살지요.” 흐르지 않는 물은 생명력으로부터 소외됩니다. 스님은 우리 마음도 마찬가지라고 말했습니다. 마음이 갇혀 있으면, 흐르지 않고 얼어붙는다면, 온전한 마음이 아니라 병든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마음을 닦는다는 표현은 관념적입니다. 마음이란 닦는 것이 아니라 쓰는 것입니다. 용심(用心)이지요. 내 마음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꽃이 필 수도 있고 어두워질 수도 있습니다. 내가 가시돋힌 말을 친구에게 한다면, 그 말이 친구에게 닿기도 전에 내 자신이 괴롭게 됩니다. 온전한 마음이 아니기에 그렇습니다. 맑은 마음으로 말하면, 그림자가 실체를 따르듯 즐거움이 그에 따르게 됩니다.”

가족이란 몇 세에 걸친 인연의 씨앗을 뿌렸기 때문에 가족으로 만난 것이라고 스님은 말했습니다. 배우자를 싫어하면 내 자신의 삶을 먹칠하는 것이란 얘기죠. “내 아내, 내 남편이 부처요 보살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마음을 흐르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 마음이 부처의 마음이 되고 보살의 마음이 되며 업(業)이 남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업을 남긴다면 이 다음 세상 또 어디선가 만나 지지고 볶게 됩니다.” 스님은 “오늘을 계기로 마음을 다 풀어버리라”고 말했습니다. “마음이 물처럼 너그럽고 따뜻하게 흘러야 인생에서 화창하고 향기로운 봄을 맞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하생략 (출처, 조선일보. 글 유석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