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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곰의하루

“추워, 안아줘~” 치매노모의 말.... 눈물, 콧물 요양보호사의 이야기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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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워, 안아줘~” 치매노모의 말.... 눈물, 콧물 요양보호사의 이야기

설악산곰 2024. 6. 24. 04:00

“추워, 안아줘~” 치매노모의 말.... 눈물, 콧물 요양보호사의 이야기  ‘죽을까, 살까’ 망설이는 눈동자. 가족과 떨어져 요양원에 들어온 어르신들은 열에 아홉이 불안에 떤다. 요양보호사로 8년을 일해 왔지만, 그 눈동자를 마주할 때마다 가슴이 철렁한다. 새로 입소한 정인정 어르신(가명·78세)은 딸을 기다리며 밤새 병실을 배회했다. 피곤하면 침대에 앉았다가 또 벌떡 일어나 출구로 향했다. 어르신의 수척한 어깨를 감싸 다시 침대에 눕힌다. “어르신, 따님은 해 뜨면 올 거예요.”  

환자의 몸을 돌보는 것만큼, 감정을 살피는 일은 중요하다. 어르신들의 정서적인 지지대가 되어드리는 것, 요양보호사의 중요한 업무다. 감정의 변화에 따라 때로 난폭해지는 치매 어르신을 대할 때는 망상이 잦아들 때까지 기다려주고 응대하는 기술도 필요하다. 나는 요가 매트를 깔고 어르신 곁에 누웠다. 그리고 서로를 바라봤다. 또다시 딸에게 가려는 어르신을 붙잡고 말을 건넸다. “어르신, 저희 엄마는 어르신처럼 딸을 예뻐하지 않았어요. 아빠 닮았다고요. 그래서 저를 어디서 주워온 줄 알았어요.” “아니야. 세상에 그런 엄마는 없어. 무뚝뚝해서 그렇지.”

어르신의 확신에 찬 말에 잠이 확 달아나 버렸다. 세상 모든 딸이 들 면 좋을 말이다. 어르신은 자랑스레 말한다. “난 아직도 딸이랑 뽀뽀하는데.” “예쁜 딸을 집에 두고 와서, 딸 걱정만 하신 거군요.” 그렇게 애타게 기다리던 딸이 찾아온 날. 어르신은 가장 반가운 얼굴을 하고 딸을 맞았다. 짧은 안부 인사가 오갔다. 이 모녀 관계에서 무뚝뚝한 쪽은 딸이었다. 치매 때문에 조금은 달라진 엄마를 못내 어색해했다. 낯설기도 안타깝기도 했을 터다. 딸은 이내 돌아갈 채비를 한다. 어르신은 딸을 붙잡으려 손을 뻗는다.  손을 뿌리치고 엘리베이터에 오른 딸. 어르신은 가장 슬픈 얼굴로 딸을 보냈다.

나는 무심코 중얼거렸다. “저러면 안 되는데…. 일이 있어서 다시 올 테니 잠시 이곳에 계시면 다시 오겠다고, 백 번이고 천 번이고 엄마에게 설명하고 가야 하는데.” 함께 그 모습을 지켜보던 보호사 동료가 문득 말했다. “나는 딸에게 부탁해 뒀어. ‘일주일에 한 번은 엄마 보러 와서, 옷 싹 갈아입히고 손톱 발톱 싹 정리해 줘’라고. 난 엄마한테 그렇게 못했거든. 경황이 없어서. 지금 같으면 잘해드릴 텐데, 그땐 몰랐지. 엄마가 그리워.” 평소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는 동료다. ‘엄마가 그리웠어’라는 말을 하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그가 요양원 어르신들을 정성껏 돌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 또한 엄마를 애도하며 이 일을 했던 게 아니었을까.

“나 좀 안아줄래? 추워.” 1년 전 치매가 시작된 엄마는 아기처럼 몸을 말고 부탁했다. 몸을 써야 하는 요양사 업무 탓에 근육통이 심했지만 타이레놀 두 알을 꿀꺽 삼키고 엄마가 누워 있는 침대로 갔다. 엄마의 등 뒤에 누워 누구보다 긴 팔로 엄마의 어깨를 감싼다. 누구보다 긴 왼쪽 다리는 엄마의 골반을 감싼다. 태아처럼. 몇 달 사이 올챙이처럼 배만 볼록하고 팔다리 근육이 다 빠져버린 엄마는 내 품에 안긴 채 말한다.

“오래 앓지 말고 가야 할 텐데….” 나는 체온을 나누며 생각한다. 시장에서 사온 멍게를 엄마에게 몇 시쯤 낼까. 1만원에 다섯 토막이던 갈치는 두 토막은 튀기고 나머지 세 토막은 무를 슴덩슴덩 썰어서 입맛 돌게 갈치조림을 해야지, 마음먹는다. 아기처럼 자꾸 안아 달라는 엄마, 이제 내가 엄마를 돌보지만 이렇게 역할을 바꿔 몇 년 살아도 나쁘지는 않다.

나는 요양원에서 매일 ‘후회’를 읽는다. 더 찾아올걸, 더 안아드릴걸, 한 번이라도 사랑한다고 말할걸. 부모를 버린 듯한 죄책감으로 혼란스러워 하는 모습도 숱하게 봤다. 정들었던 어르신의 임종을 지켜보면서, 아무리 노력해도 죽음을 막을 수 없다는 상실감으로 괴로워하는 밤이면, 치매에 걸린 나의 엄마를 생각한다. 부모·자식 사이에 마지막이 있을까? 전 생애에 걸쳐 연결돼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니 애도는 부모님이 죽기 전에 시작돼야 한다. 요양보호사를 하고, 수많은 죽음을 목격하면서 깨달은 사실이다. (출처, 중앙일보. 글, 요양보호사 이은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