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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곰의하루

마리 앙투아네트 의 몰락? 유언비어(流言蜚語), 역설(逆說)?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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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앙투아네트 의 몰락? 유언비어(流言蜚語), 역설(逆說)?

설악산곰 2023. 9. 1. 08:59

남자가 몰락하는 길이 있듯이 여인에게도 몰락하는 길이 있다는데, 사치와 교만과 천박함이다. 천박함은 무시를 겪지만 책 좀 읽으면 극복되고, 교만은 따돌림을 받지만 종교나 수양을 쌓으면 탈색되지만, 사치는 참으로 벗기 어려운 비난이다. 사실 여부를 떠나 인류 역사에서 가장 과도하게 사치했다고 비난받는 여성은 프랑스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1755~1793)일 것이다.

오스트리아 왕비의 16남매 가운데 하나로 태어나 프랑스 왕비가 됐으니 검소했더라도 사치스럽게 보였을 것이다. 당시 농노들은 밭두렁에서 짐승처럼 뒹굴며 살 때 프랑스 귀족들은 산해진미를 즐기다가 중간에 토하는 시간을 가진 다음 다시 먹었으니, 원성(怨聲)이 하늘을 찔렀다.

*모함(謀陷)? 역설(逆說)? 팩트(Facts)는 아무도 모른다 *

앙투아네트 왕비가 34만8000프랑짜리 다이아몬드 귀고리를 샀는데, 그 값은 그 시절 파리 중산층 5000가구의 1년 생활비라는 소문이 돌았다. 그러나 그것은 그를 음해한 귀족의 말을 스위스 출신 프랑스 철학자 장 자크 루소(1712~1778)가 혁명을 합리화하려고 그대로 ‘고백록’에 기록한 것이다.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라고 독설을 퍼부었다는 말도 혁명파가 지어낸 낭설이다. 앙투아네트 왕비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궁궐 안에 텃밭을 만들어 농사를 짓고, 다친 농부를 치료해 주고, 빵공장을 세워줬다. 그런데도 프랑스혁명 와중에 국고 낭비, 부패, 오스트리아와의 결탁, 왕을 타락시킨 혐의, 백성 기만, 프랑스 멸망 시도, 전쟁 유발 등으로 기소됐다. 혁명에는 늘 누명이 필요했다. 프랑스인은 그를 ‘오스트리아 계집’이라 부르며 단두대에 세웠지만, 그는 끝까지 품위를 잃지 않았다.

앙투아네트 왕비는 단두대 계단을 올라가다가 형리의 발등을 밟자 정중하게 사과했다. 사제가 고해성사를 말하자 왕비는 “지은 죄가 없으니 고백할 것이 없다”고 대답하고 파리광장에서 의연히 죽었다. 왕비답게….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유럽 여행때 베르샤이유 궁전의 마리 앙투아네트 침실, 호화스러움의 극치, 역사는 진실을 규명, 팩트로 이야기 하여야하는데 지식인들의 오락가락 해석, 문외한들은 혼란스럽다. 왜 역사도 이렇게 이념에따라 오락가락 한단 말인가? 한심한 세상이로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