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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곰의하루

“이게 뭡니까~” 나비 넥타이 매고 한평생 직언… 김동길 교수 사망 본문

시사

“이게 뭡니까~” 나비 넥타이 매고 한평생 직언… 김동길 교수 사망

설악산곰 2022. 10. 5. 03:43

김동길(94) 연세대 명예교수가 4일 오후 10시 50분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호흡기 질환으로 별세했다. 고인은 자신의 시신을 의과대학에 기증하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유족들은 전했다. 1928년 10월 2일 평남 맹산에서 태어난 김 교수는 미국 보스턴대에서 역사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연세대 사학과 교수와 14대 국회의원, 신민당 공동대표, 조선일보 논설고문 등을 지냈다. 나비 넥타이와 콧수염이 트레이드 마크였던 그는 수많은 강연과 기고, 방송, 유튜브 등을 통해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설파했고 숱한 독자와 시청자의 호응을 얻었다. 2017~2018년 조선일보에 연재한 ‘김동길 인물 에세이 100년의 사람들’이 만년의 대표적 저술이었다. 유족은 여동생 김옥영·김수옥씨 등이 있다.

“내 기력이 있는 동안 자유민주주의를 위한 주장을 멈추지 않을 겁니다. 불의(不義)를 보고 말 안 하면 용기가 없는 거지요.”(2015년 조선일보 인터뷰) “이승만 아니었으면 대한민국 없습니다. 공화국을 세운 건 5000년 역사에 처음 아닌가.”(2020년 월간조선 인터뷰) 94년에 걸친 직언(直言)의 한평생이었다. 북한에 공산 정권이 들어서자 주저 없이 고향을 떠났고, 유신 시절에는 민주화 운동에 투신했으며, 세상이 지나치게 왼쪽으로 기울었다고 여겨졌을 때 ‘자유’와 ‘민주주의’의 가치를 다시 묵직하게 설파했다. 지면과 방송, 유튜브를 가리지 않았다.

4일 별세한 김동길 교수는 1928년 평남 맹산에서 태어났다. 면장이었던 부친 김병두씨는 광산업에 손을 댔다가 가세가 기울었고, 어머니가 가족을 돌보며 그와 그의 누나(김옥길 전 문교부 장관) 등 4남매를 공부시켰다고 한다. 광복 직전 잠시 국민학교 교사 생활을 했고, 1946년 월남했다. 연희대(현 연세대) 영문학과를 다녔고, 미국 유학을 떠나 인디애나주 에반스빌대에서 역사학을 공부했다. 보스턴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을 때 주제는 링컨이었는데 “링컨은 정직한 사람도 정치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귀국 후 연세대 사학과 교수를 지내며 잡지 ‘씨알의 소리’ 등에 박정희 정부를 비판하는 글을 쓰는 등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다. 유신 정권 때인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기소돼 ‘학생운동권의 배후 조종자’로 몰려 징역 15년을 선고받았으나 형집행정지로 풀려났다. 이때 해직된 뒤 1979년 10·26 때 일시 복직했다가 1980년 신군부의 탄압으로 다시 해직됐으며, 1984년에야 복직할 수 있었다. 그는 훗날 박정희를 회고하며 “유신체제가 잘못된 것이 많지만 조국의 경제를 이만큼 만든 것은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해직 기간 중 에세이, 신문 칼럼 집필과 강연으로 대중과 친숙해지며 ‘스타 학자’의 반열에 올랐다. 콧수염과 늘 매고 다니던 나비 넥타이는 트레이드 마크처럼 떠올랐고, 눈치 보지 않고 정면으로 일갈하는 “이게 뭡니까?”라는 그의 말이 유행어가 됐다. 1985년 야당이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킨 직후 ‘3김씨는 이제 정치를 그만두고 낚시나 할 것이고 민주주의를 위해 40대가 기수 역할을 하라’는 신문 칼럼을 써서 역풍을 맞기도 했다. 1991년 강경대군 치사 사건 직후 “그를 열사라고 부르지 말라”고 했다가 논란을 빚자 사표를 내고 학교를 떠났다.

그는 평생 결혼을 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았지만 “결혼하지 않았을 뿐 늘 사랑하고 살았고, 여성을 떠나본 적도 없다”고 말했다. 이하생략 (출처, 조선일보 유석재 기자) (나는 교수에대하여 별로 아는것은 없으나 그의 촌철살인 엣세이는 좋아한다. 한때 그의 엣세이 나의 책상 머리에 놓아두고 필독한적이 있다. 때론 정곡을 때리는 말도있고, 때론 엉터리같은 왜곡도있고 .. 하여간 고 이규태 님등과함께 나를 깨우쳐주신 스승, 늘 존경하였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설악산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