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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곰의하루

예수는 행복 했을까?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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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행복 했을까?

설악산곰 2023. 4. 23. 05:06

예수는 행복 했을까?  “늘 궁금했다. 성경에는 왜 예수님이 웃으셨다는 대목은 하나도 없을까. 우셨다는 대목은 세 번 나온다. 베다니의 나사로 무덤 앞, 예루살렘으로 입성할 때 예루살렘의 멸망을 내다보면서, 그리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였다. 그런데 왜 웃으시는 장면은 없을까.”

“당시 제가 알던 신앙은 이랬다. ‘하늘 높은 곳에 하나님이 계신다. 이분은 자신을 믿지 않으면 지옥에 보낸다. 그 사람이 아무리 착해도 안 믿는 사람은 지옥에 간다.’ 저는 어쩐지 하나님이 하나님답지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이라면 좀 더 통이 크고, 공평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외국에서 큰 지진과 해일로 많은 사람이 죽었다. 어떤 목사님은 ‘그 나라는 예수를 안 믿어서 그렇다’고 했다. 그때부터 다른 교회를 다녀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방황하다가 서울 장충동 경동교회에서 강원용 목사의 설교를 듣게 됐다. “놀라웠다. 제게는 충격이었다. 강 목사님은 ‘예수 믿어서 천당 가는 것’보다 ‘예수의 제자가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예수님을 신으로 숭배하는 것보다 예수님을 따르는데 방점을찍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분이 미국 유니언 신학대에서 세계적 신학자 폴 틸리히에게 배우셨더라.”

한국 교회의 ‘묻지마 신앙’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교회에서는 대개 ‘묻지마 신앙’이 훌륭한 신앙으로 생각된다. 저는 그게 답답했다. 한번 뿐인 우리의 삶에는 진정성이라는 게 있다. 종교의 ‘종(宗)’자는 근원, 즉 뿌리를 뜻한다. 종교는 자기 삶의 뿌리와 연결돼 있다. 여기에 대해 묻지 말라고 하면 결국 해결이 되겠나. 그게 중세 때 종교와 무엇이 다르겠나. 종교에도 시대마다 시대정신이 있다.” 최원영 작가는 '묻지마 신앙'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성숙한 기독교인이 필요한 시대라고 강조했다.

“기독교의 모태에 해당하는 유대교에는 원죄(原罪) 개념이 없다. 구약성경에도 원죄라는 용어는 없다. 원죄가 유전된다는 말도 없다. 기독교의 원죄 개념은 4세기에 성 오거스틴(354~430)이 만들었다. 인류의 죄를 대신해 예수님이 십자가 죽음을 당했다는 대속(代贖)의 개념도 1세기에 사도 바울이 만들었다고 봐야 하지 않겠나. 당시 시대적 필요성이 있었으리라 본다. 진리는 변함이 없지만, 지금의 시대정신은 또 다르다. 2021년 작고한 존 쉘비스퐁 주교(미국 성공회)는 ‘기독교,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고 했다.”

“기독교가 처음 등장한 1~3세기는 ‘신앙의 시대’였다. 초기 기독교인은 예수를 믿느냐보다 예수의 가르침을 행하느냐를 중시했다. 4세기에 기독교가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됐다. 예수의 신성, 원죄, 삼위일체 등의 교리가 생겨났고, 정통과 이단을 구분하는 ‘믿음의 시대’가 열렸다. 4~20세기는 그런 믿음의 시대가 공고히 진행됐다. 지금은 21세기다. 이제는 새로운 ‘깨달음의 시대’가 열려야 한다.

“깨달음이 있을 때, 비로소 우리의 신앙이 성숙하기 때문이다. 이미 정해진 답과 스스로 당연하게 여기는 믿음의 틀. 거기에는 깨달음이 없다.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 말씀도 그렇다. 거기에 담긴 뜻을 깨칠 때, 비로소 우리의 신앙도 철이 든다. 깨달음을 통할 때 성숙한 기독교인이 된다.” 예수는 언제 행복했을까? 묻지 않는 신앙(信仰)은 위험하다 (백성호의 현문우답 각색) 기독교나, 불교. 이제는 시대정신에 맞는 종교로 재탄생되어야 한다고 감히 주장한다. 나의 주장은 허물, 당신의 이해가 공덕입니다. (설악산곰)

                                            아~~ 옛날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