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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곰의하루

불교종단까지 정치 판? 도대체 왜이리 되었나? 2 본문

시사

불교종단까지 정치 판? 도대체 왜이리 되었나? 2

설악산곰 2023. 7. 8. 05:11

깨닫고 나서 그는 자유로워졌다. 이치를 깨치고 나니 삶이 그토록 힘든 이유가 빤히 보였다. 석가모니는 자신이 자유로워진 만큼 남들도 자유로워지길 바랐다. 자신이 지혜로워진 만큼 남들도 지혜롭기를 바랐다. 자신이 행복한 만큼 남들도 행복해지길 바랐다. 그래서 자신이 깨달은 이치(法)를 사람들에게 전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전법(傳法)’이다.

불교에서는 깨달음과 전법을 수레의 두 바퀴로 본다. 우선 깨달음이 있어야 하고, 그런 뒤에는 세상 모든 이를 이롭게 하기 위해 그 깨달음을 전하는 것이다. 이것이 불교의 두 기둥이다. 그래서 불교 신자들은 서로 인사할 때 “성불(成佛)하세요”“성불하세요!”라고 말을 건넨다.

그런데 조계종에서는 최근 엉뚱한 바람이 불고 있다. 깨달음을 미루고 전법을 하자는 주장이다. “지장보살께서도 지옥 중생을 다 제도하기 전까진 성불을 다음 생으로 미룬다고 했습니다. 우리도 ‘성불합시다’ ‘성불하세요’ 다음 생으로 미루고 금생에는 부처님 법을 전합시다.” 조계종의 일각에서 제기되는 주장이다. 그들은 “성불합시다” 대신 “전법을 합시다”라는 슬로건을 내세우고 있다.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다. 2600년 전 석가모니 붓다가 깨닫지 못했다면 불교는 존재하지 않았다. 지장보살의 예도 마찬가지다. “지옥이 텅 비지 않으면 성불을 서두르지 않겠다”는 지장보살의 선언은 중생에 대한 연민과 자비를 극적으로 드러내는 표현이다. 그것이 깨달음을 향한 수행을 다음 생으로 미루고 전법과 포교에만 전념하자는 말이 아니다. 이 구절에 담긴 뜻을 깊이 읽어야 한다.

깨달음과 전법은 불교라는 수레에 달린 두 개의 바퀴다. 만약 깨달음을 포기하고 전법만 한다면 어찌 될까. 하나의 바퀴로 제자리만 맴돌게 된다. 머지않아 불교는 생명력을 잃게 될 것이다. 석가모니 붓다가 자신의 깨달음을 전한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우리도 깨닫게 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부처님은 “자등명 법등명(自燈明 法燈明)”이라고 했다. 법의 등불도 켜고, 내 안의 등불도 켜라고 했다.

만약 조계종 일각의 주장처럼 전법만 할 요량이면, 굳이 ‘자등명 법등명’을 말할 이유가 없다. 자등명은 빼고 법등명만 있어도 된다. 붓다의 깨달음과 그걸 기록한 경전만 있어도 된다. 그런데 석가모니 붓다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유언처럼 남긴 그의 마지막 가르침은 “자등명 법등명”이었다. 우리도 붓다 자신처럼 깨달으라고 했다.

깨달음이 없는 불교는 더 이상 불교가 아니다. 깨달음이 없는 조계종도 더 이상 조계종이 아니다. 새가 두 날개로 하늘을 날듯이, 수레는 두 바퀴로 땅을 딛고 나아간다. 그게 깨달음과 전법이다. 수행과 깨달음에 관심이 없는 종단 정치판의 노골적인 정치적 욕망이 불교의 정체성을 흔들고 있다. 이러다가 조계종이 ‘팥소(앙꼬) 없는 찐빵’이 되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출처, 중앙일보. 글,백성호 종교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