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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곰의하루
8월 말, 미루었던 휴가를 다녀왔다. 여행 전, 저녁 산책을 하던 공원에서 아직 여름이 끝나지 않았다는 듯 자지러지던 매미 소리가 무색하게 어느새 낭창낭창한 귀뚜라미 소리가 들렸다. 문득 시절인연(時節因緣)이란 말이 떠올랐다. 이 말은 본래 불교 용어로 “모든 현상은 어떤 시기가 되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는 뜻인데 최근에는 친구나 연인 관계에서 더 많이 쓰인다. 인연에도 생로병사와 유효 기간이 있다는 뜻이다. 사람이 살면서 판단하기 어려운 게 ‘때’를 아는 것이다. 특히 시작할 때와 물러날 때를 아는 건 더 힘들다. 바다에는 밀물과 썰물이 몰아치는 ‘물때’가 있다. 노련한 어부는 물때를 잘 파악해, 물이 들어올 때 바다로 나가고, 빠지기 전에 돌아온다. 지혜로운 농부 역시 계절에 부는 바람의 밀도로 씨..
산다는 것은 비슷비슷한 되풀이만 같다. 하루 세 끼 먹는 일과 일어나는 동작, 출퇴근의 규칙적인 시간 관념 속에서 오늘이 가고 내일이 온다. 때로는 사랑도 하고 미워도 하면서, 또는 후회를 하고 새로운 결심을 하고 살아가고 있다. 노상 그날이 그날 같은 타성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면서 시작도 끝도 없이 흘러간다. 이와 같은 반복만이 인생의 전부라면 우리는 나머지 허락 받은 세월을 반납하고서라도 도중에 뛰어내리고 말 것이다. 그러나 안을 유심히 살펴보면 결코 그 날이 그날일 수 없다.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내가 아니다. 또한 내일의 나는 오늘의 내가 고스란히 이어지는 것이 아니다.사람이란 다행히도 그 자리에 가만히 놓여 있는 가구가 아니며, 앉은 자리에만 맴돌도록 만들어진 시계바늘도 아니다. 끝없이 변화하면서 ..
마지막 보내고 싶은 너 네가 떠나가는 길 모퉁에 서서 나는전해줄 말조차 잃어버린채 두 손을 가슴앞에 가지런히 모으고 있다. 가슴에 얽혀 칭칭 감겨있는 낡은 기억의 끄나풀들이 길따라 풀려 나가고 까맣게 타버려 형체 조차도 알수없는 알몸이 너의 방을 기웃 거린다 마지막 보내고 싶은 너를 기쁨의 고갯마루에서 다시는 내려오게 하고 싶지 않은데 검은 바람이 불어와 빈 가슴뿐인 너의 등을 밀어 버렸다. 나 이제 눈 감은 눈도 너를 따라가고 귀 닫은 귀도 너를 따라가고 마음닫은 마음도 너를 따라 나서면 이제 다시는 이별할 이유도 없고 다시는 이별할 슬픔도 발 붇이지 못하는 곳에서 보내고 싶지 않은 너와 더불어 잡은 손 따스하게 눈빛만 바라보아도 한없이 좋겠다. 끝없이 머물렀으면 더없이 좋겠다. (글, 無 精)새로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