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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곰의하루

아버지의 마지막 외출 본문

노인학

아버지의 마지막 외출

설악산곰 2024. 8. 1. 03:29

나는 늘 술에 취해 들어 오는 아버지가 싫어서 마침내 집을 나오고야말았다. 아버지를 닮았다는 얘기 듣고 싶지 않아, 학교 생활도 충실히 했는데 지나가는 사람에게 주정을 부리다 파출소 까지 끌려가신 아버지를 보고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친구의 자취방에서 며칠 생활 하던 나는 학교로 찾아 오신 어머니를 통해 아버지가 심장병으로 입원 하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하지만 그 소식에 내가 얼굴 표정 하나 변하지 않자 어머니는 몸 조심 하라는 당부만 하신 채 하얀 봉투 하나를 내 밀고 돌아 가셨다.

봉투 안에는 손 때 묻은 만원 짜리 열장과 이런 쪽지가 들어 있었다. "미안하다 아빠가 잘못 했다. " 다음날 수업이 끝난 뒤 내 발길이 닿은 곳은 아버지의 병실 이었다. 나는 문앞에서 한참을 서성이다가 고개를 빠끔히 내 밀고 안을 살폈다. 눈에 띄게 수척해 지신 아버지를 보고 마음이 아팠지만 그 동안 쌓였던 미움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심각한 심장병, 당뇨 까지 겹쳐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한다는 간호사의 말에 나는 도저히 들어 갈 수 없었고 또 한편으로는 들어 가고 싶지 않았다.

자식보다 담배를 좋아하고, 아내 보다 술을 사랑하고 가족 보다 술 친구를 더 필요로 하는 이해 할 수 없는 모습 만을 보여 주시던 아버지에게 차라리 이런 날이 오기만을 기다렸던 나였으니까..., 아버지의 병원 생활이 한달이 다 되어 갈 무렵 나는 돈 때문에 퇴원 수속을 준비 중이라는 말을 듣고 한참을 망설이다가 휴학계를 냈다. 그리고 새벽에 일어나 신문을 배달하고 밤 늦게 까지 식당에서 일하며 바쁘고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얼마 뒤 나는 뜻 밖의 사고를 당 했다. 새벽에 자전거를 타고 신문을 돌리다 현기증이 일어나 나도 모르게 핸들을 차도쪽으로 꺾었는데 그만 달려오는자동차에 치인 것이다.

눈을 떠 보니 병원 이었다. 나와 같은 환자복을 입고 내 곁을 지키고 계신 아버지를 보는 순간 나는 내 손을 잡고 있던 아버지의 손을 뿌리쳤다. 따뜻함이 느껴 졌지만 내 모습이 너무 초라하고 부끄러웠다. 나 때문에 병이 악화 되신 아버지를 위해 정말 돈을 벌고 싶었는데, 그날 아버지는 퇴원을 하셨다. 그리고 나도 병원비 때문에 곧 이어 퇴원하고 통원 치료를 받으며 다시 일을 시작 했다. 집에는 여전히 들어 가지 않은 채...,

그런데 하루는 아버지가 내가 일 하는 식당에 찾아와 근사한 레스토랑으로 나를 데리고 가 셨다. " 너 휴학 했니? "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아버지를 위해 내가 원한 일이었고 한번도 그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았지만 그 순간 웬지 모를 피해 의식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식사가 끝나고 한참 침묵이 흘렀다. "저요 남들 처럼 아빠 한테 애교도 부리고 성적 오르면 칭찬도 받고 잘못하면 야단도 맞고 싶었어요 " 18년 동안 참아 왔던 눈물이 봇물처럼 터지기 시작 하더니 도무지 그칠줄 몰랐다.

"너 한테 용서 해 달라고 여기 까지 왔는데 그 말을 들으니까 너무 고맙다 " 내 생에 처음으로 아버지 품에 안겨 울면서 아버지에 대한 미움을 씼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게 아버지와의 처음이자 마지막 외식이 되고 말았다. 그 뒤 아버지는 병이 더 나빠져 다시 입원 하셨다. 절로 야위어만가는 아버지가 안 쓰러워 가심 졸이며 수술 날 만을 손 잡아 기다렸는데 드디어 수술 받는 날이 하루 앞으로 다가 왔다.

그날 따라 자꾸 눈물을 보이시던 아버지는 어머니께 몇번이고 미안 하다는 말을 되풀이 하시더니 나와 동생들에게 사랑 한다는 말씀 하셨다. 그리고 초등학생 막내를 안고는 서럽게 우셨다. "우리 막둥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아빠가 언제 까지나 지켜 줄 거야. 그러니까 울지말고 엄마 말씀 잘 듣고, 알았지 약속 하지 " 막내 동생은 새끼손가락을 내 밀었다. "아빠가 왜 저렇게 나약한 말씀을 하실까 "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 못하고 잠시 발코니로 나와 밤 하늘을 올려다 보며 별님 달님에게 수술이 잘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는데 막내가 울면서 뛰어 왔다. " 누나 아빠 돌아 가셨어..,"

하루만 아니 열일곱 시간만 참으시지, 정신 없이 병실로 뛰어 들어 갔지만 나는 이제 껏 한번도 따듯하게 잡아 드린적 없던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아빠, 아빠만 사랑 한다는 말 하고 이렇게 눈 감으시면 어떡해요. 나도 아빠 한테 사랑 한다고 꼭 말 하려 했는데...,“

아버지를 그렇게 떠나 보내고 며칠 뒤 어머니 통장에 큰 돈이 들어와 있는 사실을 알았다. 돌아 가시기 이틀 전, 아버지가 고집을 피우며 아픈 몸을 이끌고 혼자 외출 하시던 일이 떠 올랐다. 그 돈이면 진작에 수술 받으실 수 있었을 텐데, 아버지는 당신이 가실 날을 미리 알고 남은 가족을 위해 조금씩 몰래 모아둔 그 돈을 남겨 주신 것이었다. 통장에 박혀 있는 아버지 이름 석자를 보며 나는 목이 메어 소리 없이 눈물만 흘렸다. 나는 1년만에 복학해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았고 지금은 가구 판매원으로 일 하고 있다. 그리고 맏 딸로서 아버지를 대신 해 막내 동생 뒷바라지를 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아버지께 미쳐 말하지 못한 사랑의 표현 인 걸, 아버지도 알고 계시겠지......., (높이나는새 님의 좋은글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