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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곰의하루

고전(古典) ‘사랑의 기술'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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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古典) ‘사랑의 기술'

설악산곰 2023. 4. 19. 07:09

“설렘 후 찾아오는 실망과 환멸 성숙한 인격·신뢰로 극복해야. 상대 소유하려는 건 자기도취 합일되지만 개성은 존중할 것. 물질·명성에 매몰 경계하고 자식·연인 나아가 이웃까지 ‘사해동포적 사랑’으로 연결” 20세기 이후 종교·철학 분야에서 성서 다음으로 많이 읽힌 고전이다. 박찬국 서울대 철학과 교수는 독일 철학자 에리히 프롬(1900∼1980)이 1956년 발표한 명저 ‘사랑의 기술’(원제 ‘The Art of Loving’·문예출판사)을 이렇게 소개했다. 전 세계에서 2500만 부 이상 팔린 고전은 위대하지만 때로 갈등과 다툼의 원인이 되는 사랑의 다양한 무늬를 사유한다.

책에 대한 전 세계적 열광은 엄청난 환희와 함께 불타올랐다가 이내 환멸과 적대로 사그라들곤 하는 사랑이 인류의 영원한 숙제임을 증명하고 있다. 지난 14일 서울 동작구 한 카페에서 박 교수를 만나 남녀의 사랑, 부모와 자식의 사랑부터 이웃에 대한 사랑을 넘나들며 오늘날 위기에 놓인 사랑과 우리에게 필요한 ‘사랑의 기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니체와 하이데거를 전공한 박 교수는 ‘참을 수 없이 불안할 때, 에리히 프롬’ ‘사는 게 고통일 때, 쇼펜하우어’ 등을 통해 일상의 불안과 우울에 대한 철학적 실마리를 모색해왔다.

*프롬은 어떤 사상가인가...“깊은 사상을 쉽게 풀어쓰는 재능을 지닌 철학자다. 대중에게 큰 사랑을 받은 탓에 학계 일부에선 그를 ‘통속적 사상가’라고 깎아내린다. 하지만 일반 대중 역시 인간·삶·행복 등 철학이 다루는 주제에 대해 일정한 관심과 이해를 지니고 있음을 고려하면 ‘심원한 사상을 명료하게 표현하는 것’은 철학자에게 꼭 필요한 능력이다. 프롬은 철학자인 동시에 정신분석학을 연구하는 의사이자 사회학자였다. 글의 명료함은 정신분석학의 임상 사례와 사회학이 다루는 구체적 현상을 끌어들인 덕분에 가능했다. 프롬의 글쓰기는 폄하될 게 아니라 철학자들이 본받아야 할 모범이다.”

*책 서문에 ‘사랑은 누구나 쉽게 탐닉할 수 있는 감상이 아니다’라는 문장이 나온다.....제목처럼 사랑에도 배움의 기술이 필요한 이유는. “사랑이 ‘난제’인 것은 흔히 사랑할 대상만 발견하면 감정이 저절로 따라오고 유지된다고 오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사랑이 이뤄지면 처음에 기적처럼 존재했던 친밀감은 약해진다. 설렘으로 충만했던 자리엔 실망과 환멸이 들어선다. 사랑은 함께 움직이고 성장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갈등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설렘을 영원히 유지할 수 있는 ‘운명의 짝’을 찾는 게 아니라 성숙한 인격과 상대에 대한 신뢰로 갈등을 극복하는 지혜다. 프롬이 사랑은 단순히 ‘즐겁고 흥분된 감정’이 아니라 ‘끊임없이 연마하고 훈련해야 하는 기술’이며, ‘대상’의 문제가 아니라 ‘능력’의 문제라고 말하는 이유다.”

*현대인의 사랑이 특별히 위험에 놓인 건 무엇 때문인가..... “프롬의 또 다른 대표작 ‘소유냐 존재냐’와 연관해 설명할 수 있다. 오늘날 많은 사랑이 왜곡된 형태로 나타나는 이유는 현대인들이 정체성을 ‘존재 양식’이 아닌 ‘소유 양식’에서 찾기 때문이다. 물질과 명성, 사회적 지위 같은 소유 양식이 사랑의 크기를 결정짓는 것이다. 현대사회에선 신(神)을 향한 사랑조차 ‘성공에 필요한 능력’을 갈구하는 ‘기복신앙’으로 전락했다.”

*‘왜곡된 사랑’이 아닌 ‘참된 사랑’을 하려면...“합일(合一)을 통해 ‘분리’와 ‘고독감’을 극복하되 각자 개성을 존중해야 한다. 이런 성숙한 사랑에선 ‘두 사람이 하나가 되면서 동시에 둘로 남아 있는 역설’이 성립한다. 프롬은 인격적으로 원숙한 사람만이 성숙한 사랑을 할 수 있다고 봤다. 인격적 성숙은 자기 자신에게만 빠져 있는 나르시시즘과 그저 타인에게 의존하려는 성향과 거리를 두는 데서 시작된다.”

프롬은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에도 마찬가지 기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상대를 ‘소유’하려는 연인처럼, 부모가 아이를 자신의 일부라고 느끼는 한 사랑은 자기도취적 만족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프롬이 생각하는 ‘참된 부모’는 아이가 부모에게서 분리돼 독자적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다. 분리된 두 사람이 하나로 나아가는 남녀의 사랑과 달리, 하나의 울타리에서 출발한 부모와 자식은 성숙한 분리와 단절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이하생략 (출처, 문화일보 나윤석 기자)

                                                                           에리히  프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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