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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곰의하루

광화문(光化門)을 살린 Yanagi Muneyoshibu (야나기 무네요시부)와 일본의 자랑, 세계적(世界的) 건축가(建築家) Dadao Ando (다다오 안도).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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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光化門)을 살린 Yanagi Muneyoshibu (야나기 무네요시부)와 일본의 자랑, 세계적(世界的) 건축가(建築家) Dadao Ando (다다오 안도).

설악산곰 2023. 10. 25. 01:12

광화문(光化門)을 살린 Yanagi Muneyoshibu (야나기 무네요시부)와 일본의 자랑, 세계적(世界的) 건축가(建築家) Dadao Ando (다다오 안도). 세계적 건축가 조선이 낳은 미의 세계에 한없는 사랑과 존경을 가지고 일제 때 헐릴 뻔한 광화문을 살렸던 Yanagi Muneyoshibu가 설립한 일본 민예관을 찾은 것 등은 의미 있는 일이었다.

日本은 국가 사이에는 철천지한을 품게 하는 큰 일이 있지만, 개인으로는 한없이 고마운 사람들도 있다. 그 가운데 일제 강점기 조선 문화를 사랑하고 지키는데 앞장선 민예운동가 Yanagi Muneyoshi를 들 수 있다. 日本은 1919年 3.1運動 後 경복궁(景福宮) 앞에 거대한 대리석(大理石) 석조물 조선 총독부(總督府)를 세우기 위해 그 자리에 있던 광화문(光化門)을 철거키로 했다.

총독부(總督府)의 무모한 결정에 Yanagi는 언론을 통해 정면으로 반대하며, 여론형성에 나섰다. Yanagi 덕분에 가까스로 철거위기를 모면한 광화문(光化門)이 자리만 이전하게 되었다. 동경제대 철학과를 나온 27세의 젊은 그는 조선을 여행 하면서 도예를 중심으로 조선의 예술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3.1만세운동 2달 後 일본신문 요미우리에 ‘조선인을 생각 한다’는 일본의 조선식민 정책을 비판하는 글을 연재 했다. 최종회에는 일본을 대표해서 조선에 사과하는 글을 싣기도 했다. 그는 해방 후 ‘한국과 그 예술’이라는 조선예술을 해설하고, 아름다움을 소개하는 책도 펴냈다.

벌써 20年 前쯤 일이다. 친구들과 함께 Naoshima의 바닷가에 있는 ‘지추 미술관(美術館)’을 찾았다. 지하 통로로 내려가 한 벽면을 차지한 Claude Monet의 작품 ‘연꽃’과 근처 바닷가에서 파도에 밀려 떠내려 온 나무 등걸을 포개놓은 작품 등 보는 것마다 감동이었다. 지하 벽 위로 뚫린 공간을 따라 내려오는 빛이 작품을 보여주는 구조 등 보통 사람들의 상식과는 딴 세계였다. Dadao Ando는 쇠락한 섬 Naoshima를 지추미술관(美術館) 문화로 섬을 살린 장본인이다.

Dadao Ando는 일본의 독보적 건축가다. 고교를 졸업한 후 프로복서를 거쳐 독학으로 건축가의 길을 걸어 왔다. 어릴 적 싸우기만 하면 돈을 준다기에 가난했던 그는 복싱을 시작했지만, 한계를 느껴 그만 두었다. 막노동을 하던 그는 우연히 헌책방에서 프랑스의 건축가 Le Corbusier의 작품을 보고, 감명을 받아 무작정(無酌定) 그를 만나러 유럽으로 떠난다. 하지만 이미 그가 세상을 떠난 뒤였다. 시베리아를 거쳐 전 유럽을 여행, 그때 얻은 영감으로 자신의 건축철학을 갖게 된다. ‘빛과 그늘’의 철학으로 40年間 Concrete 벽면 건축과 싸워 왔다. 그는 세상에는 되지 않는 일뿐이었다며, 거의 대부분(大部分)은 실패로 끝났다고 지난날을 회상(回想)한다.

그러나 남겨진 한 가닥 “실낱같은 가능성(可能性)에 모든 것을 걸고, 작은 희망의 빛을 따라 필사적(必死的)으로 살아왔다”고 밝힌다. 그는 Business 이상의 의미가 없는 ‘세계최고 높이’를 겨루는 투자가(投資家)들의 사업에는 흥미가 없다. 그보다 도시문화를 육성하는 건축물(建築物), 어린이를 위한 건축에 치중했다. United Arab Emirates의 수도에 아부다비해양박물관, Arabia 만에 떠있는 섬나라 바레인에 유적박물관의 Project를 맡았다.

기원전 3000年부터 청동기시대까지 조성된 고분군을 조망하는 자리에 만들어진 역사박물관(歷史博物館)이다. 고교밖에 안 나온 그는 건축계의 노벨상이라는 Fricutts Prize winner, Harvard University 객원 교수, Kyoto University 건축학과 교수를 지냈다. 건축은 빛과 그늘의 예술이다. 인생도 밝은 빛 같은 날이 있으면, 반드시 그 뒤에는 그늘 같은 날이 있다며, 언제나 겸손을 잃지 않는 건축가(建築家)다.

“수학계의 필즈상”이 있다면, “건축계에서는 프리커츠상”이 있는데, <필즈상은 大韓民國 허준>이 받았다면, 프리커츠상은 내가 알기로는 아직까지 없는 것 같아 하루 빨리 분발해서 大韓民國 국민 중 누군가가 수상했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램입니다. “가장 높이 나는 새가 가장 멀리 본다.(The bird that flies highest sees farthest)”는 말이 있듯이 아침(朝) 일찍 새벽 4時에 일어나 좋은 글이 있어 Internet에서 가져 왔습니다. (방초님의 블로그)

영랑호의 가마우지 그리고 설악 신성봉의 여명

내 손에 잡은 것이 많아도 손이 아프고, 등에 짊어진 것이 많으면, 삶의 무게를 아프게 하고, 내가 힘들고 외로워 혼자 있을 땐, 큰 것도 아니고 아주 작은 한마디 나를 안아주면서 사랑한다고 정말 사랑한다는 그 말 해준다면, 나는 <꽃길>이라 생각할 것입니다. 정말 나를 사랑한다는 그 말을 해준다면, 나는 사막을 걷는다 해도 “꽃길”이라 생각하겠네요.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것입니다. ‘저 높은 곳에서 살아갈 사람 오직 그대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