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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곰의하루

큰 사찰들의 위용(偉容) “여기서부터 성지(聖地)입니다. 산문(山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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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사찰들의 위용(偉容) “여기서부터 성지(聖地)입니다. 산문(山門)”

설악산곰 2023. 10. 27. 00:50

최근 강원 평창 월정사는 오대산 입구에 ‘산문(山門)’을 완공하고 현판식을 가졌습니다. ‘오대성산(五臺聖山)’ 넉 자가 큼직하게 걸렸지요. 글씨는 월정사에서 수행한 한국 현대불교의 거인 탄허(呑虛·1913~1983) 스님의 유묵(遺墨) 중에서 집자(集字) 했다고 합니다. 월정사는 지난해 1월부터 188.53㎡(약57평) 면적에 팔작지붕 형식의 목조로 산문을 건축해 단청을 마치고 지난 10월 13일에 현판식을 가졌지요.

조계종 제4교구 본사(本寺)인 월정사는 제3교구 본사인 설악산 신흥사와 더불어 강원도의 대표적 사찰이지요. 전나무 숲길과 상원사까지 이어지는 호젓한 ‘선재길’로도 유명합니다. 이번에 산문이 설치된 위치는 월정사에선 약 2㎞ 정도 떨어진 명상마을 부근입니다. 가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월정사는 입구에 성보박물관, 명상마을과 노인요양원 등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월정사가 수행과 신행공간이라면 명상마을 등은 힐링공간과 교육공간인 셈입니다.

이번에 설치된 산문은 “여기서부터는 수행과 힐링 공간”이라는 선언과 마찬가지입니다. 월정사 주지 정념 스님은 “오대산으로 들어오시는 분들이 성지(聖地), 성산(聖山)이라는 점을 생각하시고 마음을 추스릴 수 있도록 하자는 뜻을 담아 산문을 설치했다”고 설명했습니다.정념 스님의 설명에서 볼 수 있듯이 한국 불교는 산을 중시합니다. 대부분 산에 위치해 산사(山寺)로 불리고요. 대웅전 등 가람이 배치된 사찰도 중요하지만 그 사찰을 품고 있는 산 자체를 사찰과 동일시하지요. 그래서 항상 사찰 이름과 함께 산 이름을 부르지요. ‘오대산 월정사’ ‘설악산 신흥사’ ‘가야산 해인사’ ‘조계산 송광사’ ‘영축산 통도사’처럼요. 사찰을 창건하는 일을 ‘산을 연다’는 뜻의 ‘개산(開山)’이라고 표현합니다. 절이 세워짐으로써 산이 성스러운 공간이 된다는 뜻이지요.최근 조계종 사찰들에 산문이 늘고 있습니다.

경기 남양주 봉선사가 지난 3월 산문을 세웠고, 그에 앞서 전남 순천 송광사(2015년), 강원 설악산 신흥사(2016년), 경남 밀양 표충사(2017년)에도 산문이 생겼지요. 산문들의 공통점은 큰절에서 1~2㎞ 떨어진 사찰 입구에 설치돼 ‘여기부터는 사찰’이라는 경계 구분을 확실히 한다는 점입니다. 산문은 사찰과 스님들 입장에서는 ‘자존심’ ‘자부심’이기도 합니다.

사찰엔 ‘문(門)’이 많이 있습니다. 대개는 일주문(一柱門)을 들어서는 것을 시작으로 사찰에 입장하게 되지요. 사천왕상이 좌우에 배치된 ‘천왕문’도 많이 보셨을 겁니다. ‘해탈문’ ‘불이문’ 등의 문도 있지요. 사찰을 방문해보면 각각의 문을 통과하기 전과 후에 공간이 살짝 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대웅전 등 법당을 향해 갈수록 점점 깨달음의 세계를 향하는 느낌이 들도록 공간을 배치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일주문은 대부분 전각이 모여있는 가람 근처에 있습니다. 이에 반해 산문은 문자 그대로 산의 초입에 세워 속세와 경계를 짓는 것입니다.

한국 불교에는 ‘삼보(三寶)사찰’이 있습니다.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불보(佛寶)사찰 통도사, 팔만대장경을 소장한 법보(法寶)사찰 해인사 그리고 16국사(國師)를 배출한 승보(僧寶)사찰 송광사입니다. 이들 삼보사찰에는 모두 산문이 세워져 있습니다.국내 사찰 산문의 효시로는 통도사가 꼽힙니다. 저는 올봄에 출간된 조계종 종정 성파 스님 대담집 ‘일하며 공부하며, 공부하며 일하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통도사 산문에 얽힌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성파 스님은 1980년대초 통도사 주지를 지냈는데 1983년 산문을 설치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계셨습니다. 통도사는 우리 사찰 중 넓은 면적으로 유명합니다. 영축산 자락 곳곳에 크고 작은 암자가 자리하고 있지요. 그러나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사찰과 민가, 상가의 구분이 잘 안 됐답니다.

그래서 당시 주지 성파 스님은 민가와 사찰 영역을 구분하기 위해 국내 사찰 최초로 산문을 세웠답니다. 반대도 많았다지요. 산문을 설치하기 전에는 사찰 내 계곡에도 여관과 음식점이 영업을 하고 교회 주일학교 야유회도 열렸다고 합니다. 산문을 세워 경계를 나눈 후에는 음식점과 여관 등은 모두 산문 밖으로 옮겨서 사찰 안팎의 경계가 명확해졌습니다. ‘영축산문(靈鷲山門)’이란 현판 휘호는 월하 스님의 작품입니다.해인사 산문은 1996년 세워졌습니다. 가야산 계곡 입구에 설치된 산문에는 당초 ‘홍류문(紅流門)’이란 현판이 걸려 있었답니다. 산문이 홍류동 계곡에 있기 때문이었지요.

해인사는 2009년 이 현판을 ‘법보종찰가야산해인사(法寶宗刹伽倻山海印寺)’로 바꿔 달았습니다. 가로 길이가 11m에 이르는 대형 현판입니다. 원래 있었던 ‘홍류문’ 현판은 반대쪽으로 옮겨 달았습니다. 홍류문이 계곡의 이름을 담았다면 ‘법보종찰가야산해인사’ 현판은 해인사의 정체성을 보다 분명히 한 셈이겠지요.

송광사는 2015년 보성 스님(1928~2019)이 방장으로 계시던 시절에 산문을 설치했습니다. 역시 절에서 약 2㎞ 정도 떨어진 조계산 입구에 세웠습니다. ‘승보종찰송광사불일문(僧寶宗刹松廣寺佛日門)’이란 현판은 보성 스님이 직접 글씨를 썼고, 부처님 진신사리도 산문에 봉안했다고 하지요. ‘승보종찰’이란 16국사(國師)를 배출한 송광사의 위상을 보여주는 표현입니다. 보성 스님은 산문을 지날 때에는, 심지어 자동차를 타고 지날 때에도 반드시 합장하며 절을 올렸다고 합니다.

2016년 설악산 신흥사에 산문을 설치할 때는 현장에서 현판식을 보았습니다. 현판엔 ‘조계선풍시원도량설악산문(曹溪禪風始原道場雪嶽山門)’이라 적혀 있지요. 신라 때 도의 국사(?~835)가 중국 유학 후 선종(禪宗)을 들여와 설악산 진전사를 무대로 선의 가르침을 전한 것을 기념하는 의미입니다. 한국 불교에서 선이 시작된 자리라는 의미이지요. 도의 국사는 조계종의 종조(宗祖)로 불립니다. 2016년 당시 신흥사 조실 무산 스님은 이 산문을 설치한 후 무척 흐뭇해 하시던 모습이 생생합니다.

올봄에 산문을 설치한 봉선사는 운허 스님과 월운 스님이 머물면서 경전을 한글로 번역한 곳으로 유명해 ‘교종(敎宗)본찰’이라 불립니다. 법당에도 한글로 적은 ‘큰법당’이란 현판이 걸려 있지요. 그래서 봉선사 산문은 현판도 운허 스님의 글씨체를 따서 한글로 ‘운악산 봉선사’라 적혀 있어 다른 사찰들과는 차별화되는 점도 눈에 띕니다. 문(門)이란 안과 밖을 구분하는 기능과 함께 안팎을 연결하는 소통의 기능을 동시에 가지고 있지요. 멋지게 지어진 산문들이 우리 불교와 속세를 더욱 잘 이어주는 역할을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출처, 조선일보. 글, 김한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