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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곰의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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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家難)한집 아이 이야기

설악산곰 2024. 2. 2. 05:07

가난(家難)한집 아이는 일찍 철이든다. 어릴 적부터 가난했다. 부끄러워한 적은 없다. 당당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차라리 드러내는 편이 유리하기 때문이었다. ‘가난 커밍아웃’으로 도움을 많이 받았다. 중·고등학교 땐 수학여행비를 대신 내주는 선생님이 계셨고, 대학교 교수님은 산업기능요원 업체를 추천해 주셨다. 막노동 다닐 때도 십장이 벌이가 괜찮은 일감을 먼저 찔러주었다.

내 삶이 곧 가난의 역사였던지라 주변에 처지가 비슷한 친구도 많았다. 친구들은 하나같이 가난을 고백하기 두려워했고 숨기려 무던히 애썼다. 가짜 명품을 두르고 다니는 친구, 무리해서 중고 외제차를 끌고 다니는 친구, 휴대폰을 늘 최신형으로 들고 다니는 친구까지, 모두가 가난을 발각당하지 않으려 힘겨운 잔업과 철야를 기꺼이 견뎌냈다. 왜 겉치레에 그렇게까지 집착하느냐 물으면 비슷한 답변이 돌아왔다. 없어 보이면 안 되니까. 이십 대 초반엔 그 말의 정확한 의미를 몰랐다.

시간은 흘러 우리 모두 서른 중반이 되었다. 부족하나마 인생 경험이 쌓였고 자기 생각과 현실이 어긋났던 데이터가 축적됐다. 친구들은 ‘없어 보이지 않으려 했던 노력’이 실제 가난 탈출에 별 도움이 안 되며 행복과 멀어질 뿐임을 깨달았다. 나 또한 ‘없음을 숨기지 않으려 했던 노력’이 무례해 보일 수 있으며, 이 탓에 알게 모르게 기회를 많이 날려버렸음을 알았다.

시행착오의 시간은 무용하지 않아서 각자 좀 더 엄밀한 언어로 대화할 수 있게 됐다. 술자리에서 한 친구에게 좀 더 노골적인 질문을 던졌다. 왜 가난을 숨기려 했냐고. 친구는 가난을 두고 아무렇게나 말하는 사람들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실제 가난 혐오는 정말 온갖 곳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일어난다. 가난을 노력만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기초생활수급자는 외식하면 안 된다는 사람, 당사자들의 언어가 보편 감수성이 떨어져서 불편하다는 사람, 심지어 가난을 도둑맞았다며 야유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말들이 친구에게 가난이란 온갖 공격의 구실이 될 수 있음을 상기시켰다. ‘없어 보이지 않으려 노력’했던 이유는 마음이 약해서가 아니었다. 가난한 아이들은 보통 일찍 철이 든다고 한다. 실제로 평균보다 빨리 어른스러움의 외피를 두른다. 성숙해진다는 의미가 아니다. 자의식을 짓뭉개 자신을 감추는 법을 습득한다는 뜻이다. 가난이 공격거리가 된다면 재빨리 태도를 바꿀 뿐이다. 이하생략 (출처, 조선일보. 글,천현우 작가. 전(前)용접근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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