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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곰의하루

부끄러움을 모르는 세상?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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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을 모르는 세상?

설악산곰 2024. 6. 21. 00:24

부끄러움을 모르는 세상? 옛날의 경전을 읽어보면 맹자(孟子)처럼 부끄러움에 대한 논의를 많이 했던 사람은 찾기 어렵다. 사단칠정(四端七情)의 성리철학을 수립한 맹자는 의(義)의 단(端)이라는 수오지심(羞惡之心)을 거론하여 인간 내면의 수치스러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놓았다. 부끄러울 치(恥)라는 글자를 설명하면서, “사람에게 부끄러워함은 중대한 일이다(恥之於人大矣)”라고 선언하여 수치심이 인간의 삶에서 지닌 의미가 대단하다고 했다. 주자(朱子)도 이에 대해 부연 설명을 했다. “부끄러움이란 나의 마음속에 지닌 고유한 수오지심이다. 부끄러운 마음이 있다면 성현의 지위에 나아갈 수 있으나 부끄러운 마음을 잃어버리면 짐승의 세계로 돌아가 버리니 매우 중대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다산 정약용은 그의 경학연구서인 『맹자요의(孟子要義)』에서 “그 남만 같지 못함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남과 같은 일을 할 수 있겠는가(不恥不若人 何若人有)”라고 해석하여 착한 일을 하는 사람과 같은 일을 하지 못함을 부끄러워할 때만 남과 같이 착한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부끄러움이 없다면 주자의 설명처럼 짐승의 세계로 추락하고 말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하였다. 맹자·주자·다산의 부끄러움에 대한 의미를 종합해보면, 인간은 자신의 잘못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반성하고 후회할 때 진보할 수 있지만, 잘못을 저지르고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한다면 짐승과 무슨 차이가 있겠느냐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래서 세상에서 말해지는 이야기에 ‘후안무치(厚顔無恥)’니 ‘철면피’니 하는 말들이 있다. 얼굴이 두꺼워 어떤 잘못한 일에도 수치스럽다는 태도가 없고, 얼굴에 철판을 깐 듯 부끄러운 표정조차 짓지 않는 경우를 뜻하고 있다. 인간이 본래부터 그러했던 것은 아니다. 어떤 일을 하고 나서 부끄러운 생각이 든다면 바로 자신을 반성하게 된다. 부끄러운 마음을 지니지 않고서야 반성이라는 덕목은 나올 수 없다. 짐승들이야 자각하는 양심도 없고, 양심이 없는 한 어떤 경우에도 부끄러운 마음, 즉 수치심을 느낄 수 없다.

(회갑 맞은 다산의 반성) 그런 이유로 공자 같은 성인도 『논어』의 곳곳에서 잘못을 저지를 수 있지만, 저지른 잘못에 대하여 반성하고 후회하면서 옳은 일로 고치기만 하면 잘못이라고 할 수 없다는 말까지 했다. 정약용도 회갑을 맞는 해에 자신의 일생을 돌아보며 지은 자서전 격인 글에서 생애 동안의 잘못에 대해서 반성하고 후회하면서, 다시는 그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 인생의 목표인 ‘현인(賢人)’ 수준에 이르겠노라는 각오를 표현한 바 있다.

“1762년에 태어나 1822년을 맞았으니 갑(甲)이 돌아온 60년의 회갑이다. 모든 해가 죄를 짓고 후회하면서 보낸 세월이다. 모든 잘못을 거두어 매듭짓고, 생을 돌이켜 올해부터는 정일하게 몸을 닦고 실천하면서 하늘이 내린 밝은 천명을 돌아보며 여생을 마치겠다.”(자찬묘지명) 우리 같은 범인의 입장에서는 다산이 무슨 잘못을 저지르고 죄악을 범했다고 여기지 않지만, 자신의 기록을 보면 ‘착함을 즐기고 옛것을 좋아함(樂善好古)’이야 좋았지만, 행동에 너무 과감했고 포용력도 부족하고, 반대파를 너무 혹독하게 비판했고, 선현의 학설에 가혹한 지적을 했던 점에 대하여는 후회하고 반성하는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성인이 아니고서야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저지른 잘못도 반성하고 후회한다면 잘못에서 벗어나지만, 후회하고 반성할 줄도 모르고 부끄러운 생각조차 지니지 않는다면 그때는 큰 죄인이나 악인이 되어버리고 짐승으로 추락해버린다는 성현의 말씀이다. 오늘의 세상을 보자. 국민 누가 보더라도 저런 일은 분명히 잘못한 일이라고 여기고 있지만 국가 최고 지도자나 지도급 권력자 누구 하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고 후회하는 표정이라도 짓는 경우를 본 적이라도 있는가. 만인이 인정하면서 저런 일에는 국민에게 사과하고 잘못을 바로잡아주기를 기대하는 일에도 일체의 잘못은 없고 사과나 반성한 빛도 없다는 데에야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국민 21%의 지지층을 제외한 대다수 국민이 어떻게 더 참으며 보고만 있을 수 있겠는가. 인간에게는 절대로 속이거나 감출 수 없는 양심이라는 것이 있다. 아무도 모르는 자신의 양심, 오직 자신만은 자신의 양심을 알 수가 있고 하늘만은 인간의 양심을 들여다보고 있다. 광명천지의 하늘이 내려다보는 양심, 잘못하고 느끼는 부끄러움, 죄를 짓고 느끼는 수치심, 그런 것을 어떻게 송두리째 감출 수 있는가. 이제는 부끄러움을 아는 세상으로 돌아가자. (박석무 다산학자·우석대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