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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곰의하루

올림픽, 차별 없는 세상으로 향하는 축제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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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차별 없는 세상으로 향하는 축제

설악산곰 2024. 8. 16. 03:26

나라 전체가 수그러들 기미가 안 보이는 폭염과 열대야로 숨 막히는 하루하루를 근근이 버티는 사이, 의지가 약한 나의 수행도 기도도 어느새 물 건너갔다. 명상이라도 해서 차크라를 열어 열을 내렸어야 하는데, 도심 속 수행자인 나는 차크라를 여는 대신 TV를 켰다. 때마침 파리 하계올림픽이 한창이었다. 덕분에 잠 못 이루는 밤을, 잠 덜 이루는 밤으로 보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더구나 우리나라 선수들의 기대 이상의 선전으로 답답했던 일상의 분위기도 조금씩 살아난 느낌이다. 이런 게 바로 지구촌 최대의 축제가 먼 나라의 승려에게까지 전해주는 긍정의 나비효과가 아닐까 싶다.  

근현대 대학의 시초격인 ‘아카데미아’의 창설자였던 플라톤도 레슬링 선수였다고 한다. 더 놀라운 건 마을 친목 도모나 동호회 차원이 아닌 이스트미아 제전(고대 올림픽)에 출전하여 금메달을 두 번이나 목에 걸었다고 하니, 존 로크의 교육론 ‘건강한 신체에 깃드는 건강한 마음’ 지덕체(知德體)를 완벽하게 실천한 철학자였다고 할 수 있겠다. 플라톤 그가 주창했던 ‘철인(哲人) 정치’에서 철인은 철인(鐵人)으로 읽어도 무리는 아닌 듯 싶다.

차별은 모든 이 마음 멍들게 해 석가도, 예수도 폐습으로 규정 그로 인한 대립과 갈등 사라지길... 이번 파리 올림픽은 ‘올림피즘(Olympism)’ 즉, 올림픽 정신을 처음으로 주창했던 교육가 피에르 드 쿠베르탱의 조국인 프랑스에서 열렸기에 더 의의가 있다. 또한 그의 아버지 샤를 루이 쿠베르탱은 우리나라와도 작은 인연이 있었다. 병인박해 때 순교한 프랑스 사제4인을 추모한 그림 ‘선교사들의 출발’을 그린 화가였다고 한다.

세계 평화와 화합을 기치로 올림픽을 지구촌 최대의 축제로 만든 공로자 쿠베르탱에게도 지울 수 없는 과오가 하나 있었다. 바로 성차별이다. 첫 올림픽인 아테네 대회에서는 남성 선수만 참가할 수 있었는데, 이에 거듭된 비판이 쏟아지자 두 번째 대회부터 여성 참가도 허용하였다. 각성의 시간이 빨랐던 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여성 참가가 이루어진 제2회 대회의 개최지도 파리였다. 알다시피 ‘올림픽’과 ‘성차별’이란 단어를 한 문장에 놓고 보면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니 이번 대회를 통하여 성차별을 비롯해 장애, 인종, 민족, 국적, 종교 등 모든 차별과 편견으로부터 발화된 대립과 갈등은 다 사라졌으면 좋겠다.

“출생을 묻지 말고 행위를 물으시오. 불은 온갖 섶에서 일어나는 것. 천한 집에 태어난 사람이라도 믿음이 깊고 부끄러워할 줄 알고 뉘우치는 마음으로 행동을 삼간다면, 그야말로 고귀한 사람이라오.”『숫타니파타』에 나오는 구절이다. 석가모니께서 출가를 결심하고 수행자의 삶을 선택했던 이유는 생로병사라는 피할 수 없는 고(苦)를 이겨내기 위함이었다. 또 다른 이유는 인간을 계급으로 나눠 차별하는 카스트 제도를 부정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예수께서도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마태복음 25:40)라고 말씀하셨다. ‘보잘것없는 사람’이란, 주류에 속하지 못한 소수자를 비롯하여 모든 차별과 혐오의 대상을 이르는 것이다. 이렇듯 두 성현의 가르침을 보더라도 인간 평등을 저해하는 차별에 대해서 만큼은 단호하게 폐습으로 규정하고 궁극의 변화를 열망하였음을 알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1924년 제8회 파리 올림픽의 실화를 배경으로 그렸던 영화 ‘불의 전차’가 있다. 동기와 목적이 다른 두 영국 육상 선수. 유대인 고리대금업자의 아들 해럴드 아브라함과 스코틀랜드인 중국 선교사의 아들 에릭 리들을 통해 차별과 편견의 극복, 그리고 종교적 신념과 조국의 영광을 놓고 갈등하는 모습을 여느 스포츠 영화와는 다르게 속도감은 지우고 느릿한 화면으로 담아내었다. 사실 영화에서는 유대인 해럴드 아브라함이 금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차별과 편견이 던진 화두는 명확하게 풀어내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기억되는 까닭은 올림픽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최선의 스토리, 즉 역경을 딛고 이겨낸 승리라는 구도에 차별과 편견을 고뇌의 장면으로 잘 엮어냈기 때문이다.

이번 올림픽은 매끄럽지 못한 진행과 선수촌 시설 문제, 기독교 모독 논란 등의 여러 가지 오점 많은 대회로 기억될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평화의 축제 기간에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계속되었다. 이 씁쓸한 사실을 우리는 잊지 않아야겠다. 프랑스 격언에 이런 말이 있다. ‘차별은 모든 사람의 마음을 멍들게 한다.’ 그렇다. 차별은 마음으로부터 시작된다. 마음이 그릇된 편견과 어우러져 혐오에까지 이르는 것이다. 열대야의 불면을 감동과 환희로 바꿔주던 올림픽도 이젠 종착역에 도착했다. 그 화합의 열차가 다시 떠날 땐 부디 차별 없는 세상으로 향하는 열차이길 기원한다. (청룡암 주지 원영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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