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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곰의하루

고(故)박정희(朴正熙, 1917~1979)대통령, 대인(大人)이 확실했다! 2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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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박정희(朴正熙, 1917~1979)대통령, 대인(大人)이 확실했다! 2

설악산곰 2023. 6. 28. 02:38

고(故)박정희(朴正熙, 1917~1979)대통령, 대인(大人)이 확실했다! 2

(2화) 아카시꽃과 할머니 이야기

70년대초, 아카시아꽃이 산과 들에 흐드러지게 핀 어느 5월 하순이었다. 경기도 성남에사는 한 가정 주부로부터 청와대 육영수 여사님 앞으로 한통의 편지가 날아왔다. 그 편지의 사연은 이러했다.

그녀의 남편은 서울역 앞에서 행상을 하여 다섯식구의 입에 겨우 풀칠을 하며 살아가고있는데, 얼마전 남편이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누워있기 때문에 온 가족이 굶고 있다는 것이였다. 그녀 자신과 어린 자식들이 끼니를 잇지 못하는 것은 그나마 견딜수 있지만 80세가 넘는 시어머니, 아무것도 모른채 마냥 굶고 있으니 도와달라는 애절한 사연.

그때만 해도 육영수 여사는 이런 편지를 하루에도 수 십통씩 받았었고 이미 널리 알려진대로 육여사님은 가난한 사람들, 병든 사람들,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을 알게 모르게 많이 도와주고 계셨다. 그 편지를 받은 바로 그날 저녁, 나는 영부인의 지시로 쌀 한 가마니와 얼마간의 돈을 들고 그 집을 찾아 나섰다. 성남시, 지금은 모든게 몰라보게 달라진 신도시 되었지만 그때는 철거민들이 정착해가는 초기개발 단계였기 때문에 도로는 물론 번지수도 정리가 안 되어서 집 찾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였다.

물어물어서 그집을 찾아갔을 때 마침 온 가족이 둘러앉아 저녁상을 받아놓고 있는 중이였다. 나는 청와대에서 찾아 왔노라 말하고 어두컴컴한 그집 방으로 들어갔다. 거의 쓰러질것같은 조그마한 초막집에서 전기도 없이 희미한 촛불 하나가 조그마한 방을 겨우 밝히고 있었다. 방 아랫목에는 머리가 하얗게 쉔 노파가 누가 찾아왔는지도 모르는채 열심히 밥만 먹고있었다.

밥상에는 그릇에 수북한 흰 쌀밥 한그릇과 멀건 국 한 그릇. 그리고 간장 한 종지가 놓여있었다. 그것을 본 순간 나는 갑자기 매우 불쾌한 생각이 들었다. 쌀이 없어 끼니를 굶고있다고 하더니 돈이 생겼으면 감자나 잡곡을 사서 식량을 늘려 먹을 생각은 않고, 흰 쌀밥이 왠일인가? 하는 생각 때문이였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한참 앉아 있으려니까 방안의 물체가 하나둘 내 눈에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그때 내가 받았던 충격과 아팠던 마음, 세월이 흐르고 흘러도 잊을수가 없다. 그 노파가 열심히 먹고있던 흰 쌀밥은 쌀밥이 아니라 뒷산 자락에서 따온 흰 아카시아 꽃이였다. 그 순간 가슴이 꽉 막혀오고 표현 할 수 없는 섦움, 목이 아파라 밀고 올라왔다. 나에게도 저런 할머니가 계셨는데.. 아무말도 못하고 나는 그 집을 나올수 밖에.....

그 며칠후 나는 박대통령 내외분과 저녁식사를 같이 하게되었다. 그 자리에서 나는 그 이야기를 말씀 드렸다. 영부인의 눈가에 눈물이....대통령께서도 처연한 표정에 아무 말씀도 없이 천정을 쳐다 보시면서 애꿋은 담배만 피우셨다.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당시에는 미처 생각을 못했었는데 세월이 흐른 지금에와서 돌이켜보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나라에서 가난만은 반드시 내 손으로....이런 매서운 결심을 하시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절절하게 가슴을 메인다.

60년대초, 서독에 가 있던 우리나라 광부들과 간호사들을 현지에서 만난 박 대통령. 가난한 나라의 대통령과 가난한 나라에서 돈 벌기위해 이국만리 타국에 와 있는 광부와 간호사. 서로 아무런 말도 못하고 그냥 붙들고 울기만 했던 그때, 박 대통령은 귀국하면서 야멸차리만큼 무서운 결심을 하시지 않았을까. “가난만은 반드시 내 손으로...”

백의의 천사 나이팅게일이 영국 왕실로부터 받은 훈장 증서에는 이런 뜻과 글귀가 적혀있다고한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은 물질로 도와라 물질이 없으면 몸으로 도와라. 물질과 몸으로도 도울수 없다면 눈물로 돕고, 위로하라” 광부들과 간호원들에게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는 가난뱅이의 나라 대통령이 그들을 눈물이 아닌 그 무엇으로 위로하고 격려할수 있었을까?

나는 매년 아카시아 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5월이 되면, 어린시절 친구들과 함께 뛰어 놀다가 배 고프면 간식 삼아서 아카시아 꽃을 따 먹던 쓸쓸한 추억과함께 70년대초 성남에서 만났던 그 할머니의 모습이 꽃이 질때까지 내 눈앞에 겹쳐 아른거리곤 한다 (글, 김두명 전 청와대 비서관)

불과 50년 전의 이야기입니다. 박정희 대통령 독재자 라고 무조건 비난하지 맙시다. 어떤 사람이든 공과(功過)는 있는법. 그 당시의 사회적 정치적 국제환경과 박 대통령 통치행위의 불가피성을 알아야 올바른 역사 인식과 평가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요즈음 청년 정치인이라고 거들먹 거리던 모 국회의원, 회기 중에도 자기 영리를 위하여 가상화폐에 몰두하여 스마트폰 만지작거리는 추태? 국민에게 석고대죄하여도 모자를 터인데 “나는 아무 죄 없습니다” 미친세상 미친놈! 정말로 화가 치밀어 텔레비전을 볼수가 없습니다. 어찌하면 좋을까요. 새마을시대, 얘기만 하면 꼰대니 치매노인 이라고 폄하하는 세상! 막말을 들어도 좋으니 지금이라도 나쁜놈들, 쓰레기 치우는 청소부가 되는 것이 마지막 나의 소원입니다. 어찌하면 좋을까요? (설악산곰)

속초  해수욕장 개장 준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