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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곰의하루

어른이란 무엇인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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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란 무엇인가?

설악산곰 2023. 6. 30. 03:57

(들어가는 말 생략) ‘어른이란 무엇인가’라는 핵심 질문에 대해서는 평소 생각하던 바가 있어 다행이었다. 나는 어른이란 책임지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지혜, 통찰, 역량, 아량이 있는 어른이 되면 좋겠지만 그 덕목들이 어른의 필수 조건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어른도 실수한다. 어른도 어리석거나 감정적 결정을 내린다. 경륜이라는 게 점점 중요성을 잃는 시대이기도 하다. 다만 내가 생각하는 어른은 경제적 손실이건 인간관계 축소이건 자기가 선택한 일의 결과가 좋지 않았을 때, 거기에 책임을 진다. 마감을 어기면 그게 자기 탓임을 인정하고 원고를 기다리는 편집자에게 연락해서 사과하고 수습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그러면 더 성공하는 삶을 살 수 있느냐. 잘못을 인정하는 데서 반성이 시작될 테고, 그러면 차후에 발전할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지기는 하겠지만 성공에는 그와 별개로 운이 필요한 것 같다. 한 개인이 어찌할 수 없는 주변 상황도 있다. 운이든 운명이든 하여튼 마키아벨리가 ‘포르투나’라고 부른 그게 따라줘야 한다. 그러니 어른이 되는 것은 성공하는 것과는 좀 다른 문제다.

다만 어른이 되면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책임지는 사람은 주인이 된다. 주인만이 책임을 지니까. ‘부모님 때문에 내 인생이 이 모양 이 꼴이 됐다’고 말하는 사람은 자기 삶의 주인이 자신이 아니라 부모님이었음을 고백한다. ‘부모님’이라는 단어 대신 그 자리에 ‘사회 구조’를 넣어도 마찬가지다. 부모의 영향력이나 사회 구조 문제를 부정하는 말이 결코 아니니 오해하지 마시기를. 나는 어른이라면 잘못된 구조를 바로잡는 작업을 하면서 동시에 자기 삶의 주인도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같은 맥락에서 ‘정책 실패는 다 전 정권 탓’이라고 하는 정치인도 어른이 아니다.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권력만 잡으면 앵무새처럼 그 말을 하니 우리 사회에 어른이 없다는 말이 나온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과연 정답이 있기는 할까? 도서관이나 서점에 가면 제각각인 조언이 넘친다. 오랫동안 수련했다는 종교인들의 답도 서로 다르다. 결국 그 수많은 답안 중 한두 가지를 선택해야 하는데, 그 선택은 책임으로 완성된다. 어떻게 살겠다고 선택한 사람, 그것이 실패로 이어지더라도 감수하기로 각오한 사람에게서는 의연함과 당당함이 묻어 나온다. 다른 선택지들을 버린 만큼 그는 더 자유롭고, 그래서 여유가 있는 만큼 더 친절하기도 할 것 같다. 여유가 없는 사람은 타인에게 다정할 수 없다. 불운과 실패까지 내 것이라고 달게 받아들이기로 하는 그 자세를 ‘운명에 대한 사랑(아모르 파티)’이라고 부르는 것 아닐까. (출처, 조선일보. 글 소설가 장강명)

영랑호  수국과 나의 아파트에서 바라보는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