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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곰의하루

고불고, 고재고재(觚不觚, 觚哉觚哉) 모난 그릇이 모나지 않으면 어찌 모난 그릇이겠는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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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불고, 고재고재(觚不觚, 觚哉觚哉) 모난 그릇이 모나지 않으면 어찌 모난 그릇이겠는가?

설악산곰 2024. 3. 15. 03:59

고불고, 고재고재(觚不觚, 觚哉觚哉) 모난 그릇이 모나지 않으면 어찌 모난 그릇이겠는가?  ‘군자불기(君子不器)’ 즉 ‘군자는 한두 가지 능력이 아닌 전인적 도량을 갖춘 인물’이라는 말을 했었다. 이런 군자에 반해, 그릇됨도 편협한 데다 주어진 이름에 부합하지도 않아서 이름값을 못하는 사람을 공자는 모난 그릇에 비유하여 “모난 그릇이 모나지 않으면 모난 그릇이겠는가?”라는 말을 했다. 사람뿐이 아니다. 제도나 정책도 이름과 실지가 다르면 제대로 된 게 아니다. 그러므로 공자는 “정치를 맡게 되신다면 제일 먼저 무엇을 하시겠습니까?”라고 묻는 제자 자로에게 “반드시 이름을 먼저 바로잡고 각자 이름값을 하도록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자로’편 제3장)

아울러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다우며, 부모는 부모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는 “군군신신 부부자자(君君臣臣 父父子子)”라는 명언도 남겼다.(‘안연’편 제11장) 이것이 바로 공자의 유명한 ‘정명(正名)사상’이다.  이름이 곧 실지이다. 각자 이름값을 하고 살면 세상은 어지러울 일이 없다. 컴퓨터 파일도 내용과 부합하는 파일명이라야 뒤죽박죽되지 않는다. 이름값을 못하는 ‘높은 분’들이 하도 많은 세상이고 보니 누구를 탓할 엄두도 나지 않는다. 조용히 나는 내 이름값을 하고 사는지 반성하기로 한다.

‘박문약례(博文約禮)’ 배움에 뜻을 둔 사람이라면 당연히 ‘문(文:문자로 쓰인 모든 문화)’을 널리 알고자 한다. 그러나, 잡다하게 널리 알기만 할 뿐 요점을 꿰뚫어 생활에 적용할 수 없다면 바른 앎이 아니다. 그러므로 공자는 “군자가 문(文)에서 널리 배우고, 예로써 그것을 요약·실행할 수 있어야 도(道)에 어긋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여기서 유명한 4자성어 ‘박문약례(博文約禮)’가 나왔다. 문화는 널리 배우는 것도 필요하지만, 몸으로 체득하여 내 몸 자체가 마치 자연의 운행처럼 ‘스스로 그러하도록’ 실천하는 ‘예(禮)’로 요약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중국 청나라 때 시인 원매(袁枚)는 “서다이옹(書多而雍), 고내멸등(膏乃滅燈)”이라고 했다. “책을 많이 읽었으되 막혀있으면 기름이 오히려 등불을 끄는 격이다”라는 뜻이다.

불씨가 작으면 부은 기름에 치여 오히려 꺼져버리고, 지혜의 샘이 막히면 읽은 책이 오히려 편견이 되어 요점을 잡지 못하고 생각과 생활이 어수선해진다. 어수선하게 실천조항이 많은 예법은 진정한 예(禮)가 아니다. 만 가지 사례를 하나로 꿰어 근본원리로 요약한 예라야 편하게 실행할 수 있는 진정한 예이다. 박문(博文)하되 약례(約禮)할 수 있어야 진정한 지식인이고 군자이다.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