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곰의하루
육십이 되면 본문
육십이 되면 김승희
육십이 되면 나는 떠나리라 정든 땅 정든 집을 그대로 두고 장농과 식기와 냄비들을 그대로 두고 육십이 되면 나는 떠나리 갠지스 강가로
딸아, 안녕히, 그동안 난 너를 예배처럼 섬겼으니,
남편이여, 그대도 안녕, 그동안 그렸던 희비의 쌍곡선을 모두 잊어주게,
축하한다는 것은 용서한다는 것, 그대의 축하를 받으며 난 이승의 가장 먼 뱃길에 오르리
생명의 일을 모두 마친 사람들이 갠지스 강가에 누워
태양의 괴멸작용을 기다린다는 곳, 환시 인 듯 허공 중에 만다라花가 꽃피며, 성스러운 재와 오줌이 혼합된 더러운 갠지스 물을 마시며 이승의 정죄와 저승의 빛을 구한다는 더러운 순결의 나라로
해골의 분말이 물 위에 둥둥 뜨면 해와 달과 별이 그려진 거대한 수레바퀴가 반짝반짝 혼령을 실어나르고 미쳐도 오직 신령으로 미친 사람들이 죽음의 천궁도를 들여다보며 환생을 근심하는 찬란한 강가
난 그 강가로 가리 힌두의 장법대로 붉은 천 하나 몸에 두르고
어느 날 햇빛 아래 문득 쓰러지면 힌두의 승려들이 나를 태워주겠지
저승돈 삼십 냥을 빈손에 들고 나는 끝으로 말하리라
부디 사리를 채취하지 말아주게,
마치 모닥불 위에 장미꽃잎을 얹은 것처럼 그리고 그 불은 아름답겠지
해골의 분말이 그 강위에 뿌려지면 난 저승으로 가지 않고 이곳으로 오리, 한강이 되어 섬진강이 되어 광주 어귀의 극락강이 되어
어머니의 나라 딸의 나라 내 원죄의 나라로
육십이 되면 그러나 나는 떠나리라 성훼와 식수가 뒤섞인 그 이상한 나라, 뼈 한 점 한 점마다 환각의 약초가 피어나고 슬픔이 완전 소독되고 임종의 오줌 안에서 뱀이 불 같은 머리를 트는 그곳으로,
죽음마저 차마 예술이 되는 끝없는 끝의 그 먼 나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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