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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곰의하루
중국천태산(天台山)의한암(寒巖), 차가운산길이야기 차가운 산길(한산도·寒山道) 한산(寒山·당대초엽무명시인) 杳杳寒山道(묘묘한산도) 落落冷澗濱(락락랭간빈). 啾啾常有鳥(추추상유조), 寂寂更無人(적적갱무인). 淅淅風吹面(석석풍취면), 紛紛雪積身(분분설적신). 朝朝不見日(조조불견일), 歲歲不知春(세세부지춘). 까마득히 먼 쓸쓸한 산길, 콸콸 흐르는 차가운 산골짝 개울. 재잘재잘 언제나 새들이 머물고, 적적하게 인적이 끊긴 곳. 쏴 쏴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펄펄 눈송이 내 몸에 쌓인다. 아침마다 해는 보이지 않고, 해마다 봄조차 알지 못한다. 인간 세상과 단절한 채 수행에 정진하는 선사(禪師), 그 곁을 수반하는 건 개울물과 산새와 바람과 눈발이 전부다. 선사의 이름은 한산(寒山), 혹은 한산자(寒山子). 불..
아내와 나 사이 이생진(李生珍 1929~ ) 아내는 76이고 나는 80입니다. 지금은 아침저녁으로 어깨를 나란히 걸어가지만 속으로 다투기도 많이 다툰 사이입니다. 요즘은 망각을 경쟁하듯 합니다. 나는 창문을 열러 갔다가 창문 앞에 우두커니 서 아내는 냉장고 문을 열고서 우두커니 서 있습니다. 누구 기억이 일찍 들어오나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은 서서히 우리 둘을 떠나고 마지막에는 내가 그의 남편인 줄 모르고 내 아내인 줄 모르는 날도 올 것입니다. 서로 모르는 사이가 서로 알아가며 살다가 다시 모르는 사이로 돌아가는 세월. 그것을 무어라고 하겠습니까. 인생? 철학? 종교? 우린 너무 먼 데서 살았습니다. 지난 2019년 봄 평사리 최참판 댁 행랑채 마당에서 박경리 문학관 주최로 제1회 "섬진강에 ..
“땅 끝 하늘가에 임 자욱, 그 어덴가 자욱 조차 스러진데 눈설은 존재들이 무상을 알리건만 그지없이 아쉬움은 가신 님 뒷모습을 피엉킨 가슴에서 또다시 뒤져 내서 입술은 떨게 되고 눈물은 그 임인양 떠는 입에 대어 드네” (피엉킨 가슴을 안고 사는 R 씨에게...‘청춘의불사르고’ 일부내용) 경대(鏡臺) 앞에서 김일엽(1896∼1971) 서시(西施) 귀비(貴妃) 어여뻐도 남은 것은 한담(閑談)거리 하물며 우리네는 제 양자(樣姿) 평범컨만 꾸미고 속 못 차리는 건 여자인가 하노라 *불교(1932.10) 중국 역사상 최고의 미인으로 일컫는 서시나 양귀비도 이제 한가한 얘깃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김일엽(金一葉)은 몇 가지 의미로 다가온다. 첫째는 일본 유학 후 1920년 잡지 ‘신여성’을 창간해 여성의 권익운동에..
오늘은 7월7일 해마다 7월이 오면 잊히지 않고 떠오르는 시가 하나 있습니다. 청포도 이육사(李陸史) 내 고장 7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 주저리 열리고 먼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던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 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먹으면 두 손을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집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이육사가 이 시를 지은 것은 1930년대, 그의 나이 30대 초반 무렵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내 고장'이라 일컫는 곳이 그가 태어나 16세까지 자랐던 고향인 경북 '안동'인지, 아니면 형무소에서 나와 친척 형 집에 잠시 머물렀던 '포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