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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곰의하루

아름다운 동행 본문

좋은글

아름다운 동행

설악산곰 2024. 7. 22. 01:18

천천히 가자. 굳이 세상과 발 맞춰 갈 필요 있나. 제 보폭 대로 제 호흡 대로 가자. 늦다고 재촉 할이 저 자신 말고 누가 있었던가. 눈치 보지 말고 욕심 부리지 말고 천천히 가자. 사는일이 욕심 부린다고 뜻대로 살아지나. 다양한 삶이 제대로 공존하며 다양성이 존중 될 때만이 아름다운 균형을 이루고 이 땅위에서 너와 내가 아름다운 동행인으로 함께 갈 수 있지 않겠는가. 그 쪽에 네가 있으므로 이쪽에 내 선자리가  한쪽으로 기울지 않는 것처럼 그래서 서로 귀한 사람. 너는 너 대로 가고 나는 나대로 가자.

네가 놓치고 간 것들 뒤에서 거두고 추슬려 주며 가는일도 그리 나쁘지는 않으리. 가끔은 쪼그리고 앉아 애기 똥풀이나 나싱개 꽃을 들여다 보는 사소한 기쁨도 특혜를 누리는 사람처럼 감사하며 천천히 가자. 굳이, 세상과 발 맞추고 남을 따라 보폭을 빠르게 할 필요는 없다. 불안 해 하지 말고 웃자라는 욕심을 타이르면서 타이르면서 가자. (좋은글)

무늬... 그대를 사랑할 때 내 안에 피어 나부끼던 안개의 꽃밭을 기억합니다. 세상에 와서 배운 말씀으로는 이파리 하나 어루만질 수 없었던 안타까움으로 나 그대를 그리워하였습니다. 나무들이 저희의 언어로 잎사귀마다 둥글고 순한 입술을 반짝일 때 내 가슴엔 아직 채 이름 짓지 못한 강물이 그대 존재의 언저리를 향해 흘러갔습니다. 마침내 나는 그대 빛나는 언저리에 이르러 뿌리가 되고 꽃말이 되고 싶었습니다.

꽃밭의 향기와 강물의 깊이를 넘어 밤이 오고 안개를 적신 새벽이 지나갔습니다. 내 그리움은 소리를 잃은 악기처럼 속절없는 것이었으나 지상의 어떤 빛과 기쁨으로도 깨울 수 없는 노래의 무늬 안에 꿈꾸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썩어 이룩하는 무늬, 이 세상 모든 날개 가진 목숨들을 무늬, 그 아프고 투명한 무늬를 나는 기뻐하였습니다. 그대를 사랑할 때 비로소 나는 기쁨의 사람으로 피어 오래도록 반짝일 수 있었습니다.

봄날이어도 좋았고 어느 가난한 가을 날이어도 좋았습니다. 그대 더 이상 내 사랑 아니었을 때 내 꽃밭은 저물고 노래의 강물 또한 거기쯤에서 그쳤습니다. 문득 아무런 뜻도 아닌 목숨 하나 내 것으로 남아서 세상의 모든 저문 소리를 견디었습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마지막 한 방울의 절망조차 비워내는 일이었으므로 내겐 내 순결한 슬픔을 묻어줄 어떠한 언어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눈물마저 슬픔의 언어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나는 너무 늦게서야 깨달아 버린 것이었습니다.

날마다 바람이 불고 계절이 바뀌었습니다. 그대를 사랑할 때 내 안에 피어 나부끼던 안개의 꽃밭을 나 너무 오래도록 기억합니다. 내 목숨에 흘러가 있는 기억의 저 아득한 무늬 위에 이제는 그대를 놓아주고 싶습니다. 그리고도 남은 목숨이 있거든 이쯤에서 나도, 그치고 싶습니다. 스스로 소리를 버리는 악기처럼 고요하고 투명한, 무늬가 되고 싶습니다. (류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