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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곰의하루

어느 조찬(朝餐)모임에서 연세가 많은 분이 퀴즈를 냈습니다. "우리 나이가 어떤 나이냐?"는 겁니다. 느닷없는 질문이어서, 그냥 무슨 말이 이어질지 기다리고 있었더니 "미움받을 나이"라 했습니다. 생각해 보니 의미가 큰 화두입니다. 저는 배우자, 자식, 이웃, 친구에게 미움받지 않고 살려고 애써야 된다는 뜻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서양 사람들이 생각하는 노년의 자세"란 글을 친구로부터 전해 받았습니다. 우리 세대에게도 실용적인 지침이 되지만 다음 세대도 이런 생각과 노력을 하고 있다는 걸 이해시키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부디 다음의 글을 차근차근 읽으시면서, 생각하는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①노년(老年)은 그동안 모은 돈을 즐겨 쓰는 시기입니다. 돈을 축적하거나 신규 투자(投資)하는 시기가 절대로 아..

나는 오후에 두어 시간쯤 햇볕을 쪼이면서 늘그막의 세월을 보낸다.해는 내 노년의 상대다. 젊었을 때 나는 몸에 햇볕이 닿아도 이것이 무슨 일인지 알지 못했고, 나와 해 사이의 공간을 들여다보지 못했다.지나간 시간의 햇볕은 돌이킬 수 없고 내일의 햇볕은 당길 수 없으니 지금의 햇볕을 쪼일 수밖에 없는데, 햇볕에는 지나감도 없고 다가옴도 없어서 햇볕은 늘 지금 내가 있는 자리에 온다. 햇볕은 신생하는 현재의 빛이고 지금 이 자리의 볕이다.혀가 빠지게 일했던 세월도 돌이켜보면 헛되어 보이는데, 햇볕을 쪼이면서 허송세월할 때 내 몸과 마음은 빛과 볕으로 가득 찬다. 나는 허송세월로 바쁘다. 나는 내가 사는 마을의 길 건너, 일산 호수공원 벤치에 앉아서 햇볕을 쪼인다. 햇볕을 쪼일 때, 나와 해는 직접 마주 대해..

노인(老人)은 무엇으로 사는가? 노년(老年)에 대한 인식(認識)이 새로워지고 있다. 일생(一生)의 한 주기(週期)로서 노년을 더 이상 여생(餘生)으로 받아 드리는 이는 없다. 그러나 정작 삶의 마지막 부분(部分)에 서있는 이들이 어떻게 늙어가야 하는지? 삶을 어떻게 정리(整理)해야 하는지? 확신(確信)하지 못하며 변화(變化)하는 세대(世代)의 갈등기로(葛藤岐路)에 서 있다. 노년을 행복하고 보람 있게 보내기 위해서는 지난날에 얼마나 거두었느냐? 보다 남은 여생의 가치(價値)를 어디에서 어떻게 찾느냐? 에 달렸다. 지나온 삶이 비록 슬픔과 상실(喪失), 실패(失敗)의 세월(歲月)이었다 해도 남은 삶의 가치는 남아 있는 것이다.남은 삶에서 훌륭한 가치를 찾는 것이야 말로 노년을 맞이하는 이들에게 가장 현명..

나는 늘 술에 취해 들어 오는 아버지가 싫어서 마침내 집을 나오고야말았다. 아버지를 닮았다는 얘기 듣고 싶지 않아, 학교 생활도 충실히 했는데 지나가는 사람에게 주정을 부리다 파출소 까지 끌려가신 아버지를 보고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친구의 자취방에서 며칠 생활 하던 나는 학교로 찾아 오신 어머니를 통해 아버지가 심장병으로 입원 하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하지만 그 소식에 내가 얼굴 표정 하나 변하지 않자 어머니는 몸 조심 하라는 당부만 하신 채 하얀 봉투 하나를 내 밀고 돌아 가셨다.봉투 안에는 손 때 묻은 만원 짜리 열장과 이런 쪽지가 들어 있었다. "미안하다 아빠가 잘못 했다. " 다음날 수업이 끝난 뒤 내 발길이 닿은 곳은 아버지의 병실 이었다. 나는 문앞에서 한참을 서성이다가 고개를 빠..